Dearest.
[오키카구]그 여자네 집 본문
1
그것은 내 고향 에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폐허가 되어 버린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오 년 전의 에도는 실로 평화롭고, 유쾌했으며, 가난하고 팍팍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부대끼고 살아가는 곳이었다. 내가 살던 거리는 가부키쵸로, 빈말로도 조용하다고는 할 수 없는 유흥가였다. 캬바레 여성들의 웃음소리와 취객들의 고함소리가 섞여드는 , 하지만 어울리지 않게도 내 어린 시절을 품어 주던 요람이었다. 그리고 그 거리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던 사람 또한 꽤나 많았는데, 그 중에 천인은 딱 한 명이 있었다. 그 소녀의 이름은 카구라였다. 언제나 보라색 우산을 쓰고 괄괄한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던 말괄량이였는데, 눈동자는 파란 보석 같았고, 피부는 정말 새하얬다. 어떻게 하면 그 하얀색을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눈보다 더 맑고 매화보다 더 보드라운 색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에도에는 무장 경찰도 있었는데, 지금은 양이당이 되어 버린 신센구미이다. 그 신센구미에도 소년이 한 명 있었다. 이름은 오키타 소고. 검의 천재이고 1번대 대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소년을 그렇게 기억하는 내 또래들은 거의 없다. 언제나 사고 혹은 땡땡이나 치고 다니는 사디스트 왕자, 세금 도둑. 소년을 이르는 말이었다. 그 때 우리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질려서는 아니꼬운 눈으로 그를 보고는 했다. 카구라도 오키타를 싫어했다. 매일 만나기만 하면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서로를 쥐어뜯으려고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둘 사이엔 증오로는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감정이 얽혀 있었던 것이다.
이 둘이 갑자기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얼마 전의 일 때문이다. 백저白詛에 걸려 병원에 있는 친구의 병문안에서 돌아오던 도중, 한 포장마차에 들렀다가 오키타와 만났다. 소년은 청년이 되어 있었고,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나와 오키타는 많이 친하지는 않았지만, 카구라를 사이에 두고 얼굴은 아는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가 나에게 술을 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키타는, 많이 취한 상태였다. 헤실거리며 가끔씩 혀 짧은 소리를 내는 모습이 평소와는 너무도 달라 웃음이 새어나오곤 했다. 그리고 오키타는 이내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질문을 던졌다. 카구라와 연락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고, 실제로 카구라와 요 몇 년간 연락한 적이 없었다. 오키타를 만나기 전까지는 잊고 있던 마을 친구이기도 했다. 카구라는 일 년쯤 전에 아버지를 따라 에일리언 헌터가 되기 위해 우주로 떠났고, 가끔씩 가부키쵸에 돌아온다는 소문만 무성했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카구라를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그리고 그는 벌개진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없잖냐. 나는 솔직한 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오키타는 오래된 이야기를 나에게 주절주절 풀어놓기 시작했다.
2
오키타와 카구라는 거의 라이벌 관계였다. 그 둘이 속해 있는 해결사와 신센구미의 구도가 그랬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두 사람의 보호자 격인 귀신 부장님과 긴토키 씨도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거렸으니까.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오키타와 카구라는 꽤나 유명인사였다. 특히 열아홉의 나이에 신센구미의 돌격대장을 맡고 있는 오키타는 아닌 듯 그런 듯 동네 소년들의 은밀한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카구라는 남녀의 차이와 나이의 페널티도 무시한 채 오키타와 동격으로 싸우는 실력자였다. 어쩌면 한 쪽 혹은 두 쪽 다 진심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인지 당사자들은 몰라도 주변인들은 둘 사이에 도는 미묘한 감정을 알아챘다. 오키타와 카구라는 가끔 타의로 붙어있곤 했다. 둘은 제법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특히 두 사람을 이어주고 싶어 안달이 난 건 주로 신센구미 쪽이었던 모양이다. 긴토키 씨는 그래뵈도 딸바보 기질이 있어서 절대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주위가 너무도 밀어주게 되면 오히려 당사자들은 별 관심이 없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오키타는 그런 어른들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카구라가 무심코 흘리듯 말한 배 위에서의 "그럼 내가 데려가 주지" 사건은 꽤 오랜 시간 거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결혼식 날짜가 언제냐는 남자아이들의 짖궂은 질문에 카구라는 진심을 다해 그들을 후려치곤 했다. 그런 사디스트 자식에게 시집갈 바엔 평생 혼자 살겠다면서. 하지만 우린 이미 알고 있었다. 카구라의 귀가 새빨개져 있다는 사실을.
가부키쵸 1번가 꽃집 앞 스낵바 윗집. 해결사 긴쨩이라는 간판이 걸린 그 집은 카구라가 꽃 같은 열아홉까지 살던 집이었다. 오키타는 순찰을 돌 때면 그 곳에서 급격히 발걸음이 느려지고는 했다. 벚꽃이 지붕을 스치는 그 집을 보며 오키타의 마음은 봄바람처럼 흔들렸으리라. 꽃잎보다 선명한 빚깔의 머리카락을 떠올리며 가슴이 두근거렸을 오키타의 마음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더운 여름, 긴토키 씨가 준 용돈으로 아이스크림을 한 아름 사 들고 친구들에게로 돌아가던 나와 카구라 앞에 오키타가 나타났을 때에, 카구라는 아무 말 없이 아이스크림을 하나 건넸고, 오키타 또한 말없이 홱 하고 받아들었다. 여름이었던 탓일까? 두 사람의 얼굴은 정말로 빨갰다. 겨울이면 눈덩이를 뭉쳐 눈싸움을 잘만 하다가도 눈덩이를 얼굴에 맞고는 화가 나선 눈밭 위에서 구르며 서로를 못 집아 먹어 안달인 듯이 굴었다. 그럼에도 서로를 피하지는 않았던 것이 참 그 아이들다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그 다음 봄이 왔다. 긴토키 씨가 사라지고 세 달이 되어 가는 날이었다. 벚꽃은 만개했다. 가부키쵸에도 싱그러운 봄바람이 불었다. 나는 긴 후리소데를 입고 벚꽃놀이를 나왔다.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로 걸어가는 도중, 벚꽃잎이 떨어지는 골목길 한쪽에서 카구라의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서럽게도 우는 카구라의 앞에는 오키타가 있었다. 나는 놀라서는 골목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카구라의 울음소리에, 오키타는 그 달콤한 다홍빛 머리카락 위로 손을 올렸다.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오키타는 카구라의 이마에 말없이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의 모습은, 지금껏 잊지 못할 정도로 순수하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제서야 실감했다. 아, 저 둘은 사랑하고 있구나.
오키타는 그 날 밤의 포장마차에서 나에게 고백하듯 말했다. 카구라를 좋아했다고. 카구라가 너무도 좋아서, 꽉 쥐지 않으면 날아갈 것 같고, 꽉 쥐면 다칠 것 같아 전하지 못했다고. 오키타는 테이블에 엎드렸다. 나는 아무 말도 않고 오키타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꽤 전에 들었었다. 카구라는 발그레한 볼로 나에게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전부를 내놓더라도 꼭 함께했으면 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그의 이름을 물었고, 카구라는 오키타 소고를 좋아했다. 결국 카구라는 지구를 떠나고 말았지만.
오키타는 자신으로써는 카구라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카구라 또한 그랬다. 둘은 그런 것들이 너무도 익숙한 아이들이었다. 자신이 불결하고 더럽혀진 사람이라고 단정짓고 사는 게. 마음은 닿지 못했다. 카구라와 나는 열아홉이 되었다. 카구라를 처음 만나던 오키타의 나이였다.
3
언젠가, 카구라는 아카시아 꽃에서 아카시아 껌 향기가 난다고 말했다. 석양빛 아래에서 그네가 두어 번 흔들렸다. 오키타와 한바탕 싸우고 난 직후였다. 카구라는 짜증이 덕지덕지 붙은 표정으로 땅을 덕덕 긁었다.
-그 사디 자식, 정말 귀찮다 해!
-하지만 카구라, 오키타와 꽤 친하잖아.
-내가? 그럴 리가 없잖냐, 해!
-사실은 싫어하지 않지?
-으윽, 어쩔 수 없지. 소요쨩 다음으로 카쨩에게만 말해 주는 거다, 해.
나는 사디가 좋아.
곱게 피어난 아카시아 꽃 아래에서, 그 꽃잎 같은 볼로 나에게 한 그 고백을 잊을 수가 없다. 솔직해지자면, 나는 두 사람이 부러웠다. 한 걸음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었는데. 한 번만 더 손을 뻗었다면 닿을 수 있었는데. 너희는 서로가 서로에게 불행을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너희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행복해질 수도 있었다. 그 누구도 불행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너희는 연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나도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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